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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영화 Review - 영화 소개 및 줄거리, 결말

by 은미르 2024. 1. 7.

 

서울의 봄 포스터 -나무위키

 

1. 영화소개

개봉: 2023.11.22.
등급: 12 관람가
장르: 드라마
국가: 대한민국
러닝타임: 141
배급: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1) 배우
정우성;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황정민; 보안사령관 전두광
김성균; 헌병감 김준엽
이성민; 참모총장 정상호
박해준; 사단장 노태건
정동환, 김의성, 유성주, 정만식, 남윤호, 정해인, 이준혁; 권준위

1979년 12월 22일, 수도 서울 군사반란 발생 그날,
 

2. 줄거리/결말

1979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간은 긴박하게 흘러갔다.

한남동에서 울린 총성을 시작으로 권력을 탐내는 이들의 야욕이 서울을 잠식한 것이다. 이들이 수도를 장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9시간. 영화 ‘서울의 봄’은 숨 가쁘게 돌아간 9시간을 살핀다.
1979년 10월 26일 밤, 국무위원 및 정부 고위관계자, 수도권 및 전방 군부대의 지휘 책임자들이 모두 육군본부로 소집된다. 소집 대상자이자 육군본부 교육참모부 차장인 이태신 소장 역시 어리둥절해하며 육군본부에 도착한다. 이 소장은 육군 헌병감 김준엽 준장과 인사를 나누며 무슨 일인지 묻지만, 김준엽은 물론 육본의 그 누구도 영문을 알지 못한다.

잠시 후, 벙커에서 최한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하고 일시 묵념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비상국무회의를 개최한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난 27일 새벽 4시, 비상국무회의 의결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사령관으로 육군참모총장 정상호대장이 임명된다. 정 대장은 계엄법에 따라 국군보안사령관 전두광 소장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해 대통령 시해 사건을 조사하게 한다. 전두광은 합수부에 체포되어 조사를 빙자한 고문을 받고 있는 대통령 시해범 김동규 중앙정보부장을 향해 '세상은 아직 그대로'라며 조롱조로 빈정댄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장면이 전환되어 눈물을 훔치는 전두광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내의 손을 움켜쥐는 이태신이 차례로 비치고, 동시에 거리에서 장례 행렬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모습과 함께 영화가 시작된다.
 
1979 10 26, 박정희 대통령이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박선호 박흥주 안가 경비원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다.
대통령이 시해되며, 최한규가 대통령으로 직무를 보게 되고, 참모총장 정상호는 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 조사 육군 최고 통수권자가 된다.
그리고 조사를 담당하던 전두광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자만한 태도로 상황을 즐긴다.
전두광은 사조직 하나회를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을 모아 세력을 규합하려 한다.
 
 “혁명의 밤은 짧지만 그 영광은 길다”는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해 모두를 선동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두광의 속내를 일찍이 감지한 정상호는 수도경비사령관 자리에 이태신 앉히고 싶어 한다.
이태신은 권력에는 관심이 없고, 융통성 없는 우직함을 겸비한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정상호는 이태신에게 여러 번 부탁하여 수도경비사령관 자리에 앉아달라고 하지만, 이태신은 매번 거절한다.
늙은 여우처럼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욕망을 품고 있는 전두광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태신.
대한민국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보안사령관 전두광과 곳곳에 퍼져있는 하나회 사람들(=전두광의 사람들)
속에서 아무것도 없는 정상호는 답답하기만 하다.
정상호는 다시 이태신을 불러 수도경비사령관이 되어 달라고 재부 탁한다.
하지만, 다시 거절하는 이태신.
정상호는 답답함에 이태신에게 군내부를 장악한 전두광과 하나회에 대해 언급하며 자신의 답답한 속마음을 말한다
결국 이태신은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수도경비사령관이 된다.
그리고 정상호는 국방부 장관 설득해, 전두광과 하나회를 9 사단장 노태건 동해 쪽 군부대와 지방으로 발령할 계획을 세우고 이에 물러설 생각이 없는 전두광은 노태건과 하나회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계략과 야심을 공유한다.
전두광은 합법적인 철차로, 대통령 시해범의 진술서에 참모총장 정상호를 언급하여 정상호를 궁지로 계획을 세운다.
그들이 세운 계획은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헌병감 김준엽,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을 전두광이 식사자리에 초대한다고 불러 모아, 그들의 손발을 묶어 놓고 동시에 정총장을 연행하고 동시에 정총장 연행에 대한 대통령 재가를 받는 것을 목표로 움직이려고 한다.
 
반란 모의 및 준비 그리고 실행한다.
 
1979 12 12, 계획대로 실행하게 된다.
결과, 한남동과 경복궁 일대에서 총격전 대립이 벌어진다.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헌병감 김준엽,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사람은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급하게 각자의 근무지로 복귀하는 사람.
정총장의 경호장교로 권준위는 정총장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놓이게 된다.
권준위는 다리에 총상을 입었지만, 이태신을 찾아가 정총장의 납치 소식을 알린다.
이태신, 김준엽, 공수혁 정총장 납치범이 전두광인 것을 확신하고 이들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것을 감지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려 한다.
사람은 협력하여 서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은 부하들의 배신으로 그의 명령 없이 그의 군부대가 움직인 것을 알게 되고 복귀를 명하지만
그의 명령을 듣지 않는 부대.
헌병감 김준엽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안일하게 대처하려는 육군참모차장 민성배에게 초동대처를 잘해야 한다며 진언한다.
하지만, 육군참모차장 민성배 육군본부 관리참모부장 오구민 등은 방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전두광과 하나회) 협정을 맺으려고 한다.
서울로 하나회가 불러들인 군부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강을 연결하는 11개의 다리를 차단하는 이태신.
마지막 다리 위에 홀로 막게 된다.
전두광은 다른 육군참모차장 직접 통화하고 협정을 맺어 하나회를 통해 동원했던 모든 군부대를 복귀시킨다고 하며 그들을 안심시킨다.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군과 협정을 맺냐는 헌병감 김준엽. 하지만 모두들 그의 의견을 무시하고, 군부대로 복귀하는 척하던 하나회가 불러들인 군부대는 변장하고 무장하여 서울로 재진입한다.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 부하들을 모두 보내고, 혼자 남아 반란군에 맞서 싸우려 한다.
하지만, 육군특수전사령관 비서실장 오진호 그와 함께 남아 싸우게 되고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하게 된다.
그리고, 반란군에게 끌려가는 공수혁.
육군특수부대가 넘어갔고,
이제 육군본부 벙커로 반란군이 몰려온다는 말에 몸을 피하려는 육군참모차장과 국방부 장관, 그리고 많은 군지휘관들.
 그들의 앞을 막고, 반란군은 본인이 최대한 막을 테니 자리를 지켜달라고 소리친다.

" 군사반란으로 나라가 뒤집어지면, 이건 우리 군의 수치고 치욕입니다."
 
그의 말에도 도망치듯 수도경비사령관 본부로 몸을 피한 군지휘관들.
그리고, 김준엽은 이태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다.
 
전두광과 하나회,
이태신과 그의 104명의 군사들.
그들은 마지막까지 반란군에 맞서기 위해 최선을 한다.
전두광은 승리가 코앞에 있음을 확신한다.
그리고 이태신은 반란군을 제압하기 위해 104명의 부대를 이끌고 전두광이 숨어있는 곳으로 간다.
숨어있던 국방부장관이 전두광에게 넘어가 이태신에게 물러나라고 하며 결국 전두광과 하나회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최한규 대통령도 결국 전두광과 하나회의 협박 따라, 참모총장에 대한 조사를 허락하게 된다.

최한규 대통령은 결재하며, 사후결재라는 표시를 남긴다.
1979.12.13 05:13
 
다시 다음 날인 1979년 12월 14일, 전두광의 안내를 받으며 반란군 지휘부는 단체 사진을 찍는다. 반란군 장성들이 하나하나 클로즈업되며 그들의 이후 행적과 이력들이 하나둘씩 명시되고, 신군부가 이후 자행한 행적을 자막으로 띄운 후 플래시가 한 번 더 터짐과 동시에 사진이 흑백으로 변한 뒤 화면 전체가 암전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오는 도중 사진이 모티브가 된 하나회 인사들의 실제 사진으로 바뀌어 비치고, 전선을 간다의 커버 버전이 흘러나온다
 

3. 등장인물들

장태완 (정우성)
장태완 (1931 9 13~2010 7 26)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1979 12·12 군사 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으며 수도 경비사령관이었으며, 1980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이후 한국증권전산회장, 재향군인회장, 16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0 숨졌으며 유해는 정승화 장군 등이 묻힌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진기 (김성균)
국방부 조사대장을 지냈고 1979 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재직하던 , 10·26 사건이 터지자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직접 체포하기도 하였으며, 12.12 군사 반란 당시 신군부 측이 육참총장이던 정승화 장군을 불법으로 연행하자 이에 저항하다 육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결국 이듬해 신군부의 강제적인 핍박으로 인하여 1980 육군 준장으로 자진 예편했다. 예편된 후에는 1996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지냈으며

정병주 (정만식)
1979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자 장태완 육군 수도경비사령관과 함께 같이 아울러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막아보려 했지만, 정병주 사령관 자신이 준장 진급에 가급적으로 각기각기 각별히 도움을 여단장 최세창과 여단장 박희도한테 배신되었다. 정병주는 전두환의 군사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직속 부하들에 의해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으며 사령관 정병주 장군 그를 보호하려던 육군 특전사령관 전속부관 출신의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도 쿠데타군의 흉탄에 맞아 숨졌다.
1980 1 20, 정병주는 결국 현역부적합 처리되어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다. 이후 정병주는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 반란에 대한 부당성을 주장하다가 1989년에 목매달아 숨진 변사체로 발견됐다. 당국에 의해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정병주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는 점에서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의혹이 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정병주의 죽음에 대해 논란을 제기했다.

정승화 (이성민)
12.12 쿠데타 이후 하나회를 비롯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당시 전직 중앙정보부 부장을 지냈었던 김재규가 자행한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보충역 이등병으로 예편되었다가 훗날 YS 문민정부 시대에 와서 무죄 판결을 받고 복권되었다.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등병으로 강제 예편]
1979 12.12 사태 당시 전두환의 부하 허삼수 등에게 연행되고, 육군참모총장직이 박탈됨과 동시에 육군 보안사령부 서빙고 분실에서 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 등과 함께 고문을 받은 그는 국방부 군법회의 재판에 회부되어 공판에서 내란방조미수죄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직후 보충역 육군 이등병으로 강제 예편되었고 곧이어 국방부 장관의 형량 확인 과정에서 징역 7년형으로 감형되었다.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1980 6 10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으며, 집행유예형이 내려졌지만 81 3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특사로 사면, 복권되었다가 1988 군적이 회복되었다.
 

4. 명대사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남들이야 내 알 바 아냐. 각자 자기 소신대로 인생 사는 거니까. 하지만 봐라, 내 이름 앞에 뭐라고 쓰여있는지. 수도경비사령관이 서울을 내버려 두고 어디를 가라는 거야. 오늘 밤 서울은 끝까지 우리 부대가 지킨다.
이태신

5. 감상평

영화는 아픈 역사지만 그럴수록 두 눈 뜨고 똑똑히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씁쓸해도 외면할 수 없는 근현대를 비추며,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기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누군가는 울분을 토할 것이며, 누군가는 아파하겠으며, 누군가는 무관심할 수도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중에서 뼈아픈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
정치와 권력, 일반 시민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무엇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만들어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시대일 때나 지금도 매한가지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일반 시민인 것이다.